불안의 조짐은 지난해 서해안 영광군에 위치한 영광 3호 원전 점검 중에 불거졌다. 점검 과정에서 마모된 틈으로 방사성 증기가 새어 나오게 되면 최악의 경우 원전 폭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제어봉 안내관에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영광 3호는 결국 2012년 11월 폐쇄되어 점검 및 보수작업에 들어가게 됐다. 그것은 공공의 안전에 직결되는 긴급한 사안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바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뿐 아니라 규제기관인 원자력 위원회조차 이를 쉬쉬하고자 한 정황 증거가 수면으로 떠올랐을 때만 해도 그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영광 3호 사태 이후 영광 4호 역시 제어봉 안내관에 이상 징후 진단을 받았다. 2012년 11월 20일자로 설계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에 대해 한수원측이 수명연장 계획을 제기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환경과 시민단체들은 공공안전을 위협하는 그러한 연장 운영을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그 와중 일련의 원전비리사건의 중요한 키워드인 ‘위조 부품’ 파문이 일며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원전에 사용되는 모든 부품은 인증기관에서 시행하는 품질 및 안전 검사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울진 3, 4호기와 영광 3, 4, 5, 6호기에 사용된 34개 품목 587개 부품이 위조된 품질 검증서로 납품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문제 부품들이 사용된 원전의 폐쇄가 잇따르는 가운데 영광 5호기와 6호기에서 추가로 12개 품목 694개 부품의 검증서가 위조된 정황이 드러나며 해당 원전들의 재가동 여부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올해 5월에는 위조 부품을 사용한 부산 인근 고리의 원전들이 추가로 가동 중지되었다.
정상 가동시,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들은 국내 전력 소비량의 35퍼센트 이상을 제공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총 23기 원전 중 10기가 가동이 멈춘 상태로 원자력 발전 총 전기 생산량의 37퍼센트에 해당하는 770만 킬로 와트의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어 정부로 하여금 전력수급비상체제를 가동하게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비리로 인해 입찰자격 제한 조치를 받은 업체들 중 4곳이 2008년도에서 2012년 사이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거나 ‘상생협력 우수 원자력 기업인’으로 선정되는 등 우수업체로 인정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 부품의 제품 품질 및 안정 시험 성적 위조 참여 업체인 새한 TEP는 2012년 교육 과학 기술부 표창까지 받은 우수업체로 알려졌다. 한수원측은 천여 개 업체에서 삼백만 개 부품을 원전에 납품 받고 있으나 현재로선 그러한 부품들의 안정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원자력안전위원회조차도 그러한 추문이 재차 불거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평가들은 1956년도 문교부 기술교육부에 원자력과가 신설되었을 때부터 업계에 만연해 온 유착관계를 이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한다. 일본 마츠야마 대학 장정욱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 추궁과 처벌 없이 지금까지 왔다며 “한국의 원전 정책은 안전보다 경제성의 논리에 휘둘려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11년 10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발족되기 전까지 교육과학기술부를 위시한 원자력 에너지 개발 기관에서 안전성 심사도 담당하는 체제였다. 50여 년간 원자력 발전 산업은 원자력법 하나로 규제되어 왔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은 2011년에 이르러서야 IAEA에게도 지적 받아왔던 기존의 단일 시스템을 벗어나 원자력진흥법, 원자력 안전법, 원자력안전위원회법 및 별도 법령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1년 원자력 안전 규제 및 심의 업무를 인수한 이후에도 공정한 심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과 강창준 전 위원장은 원전 건설 관련 업체인 삼성물산과 두산 중공업 등 업체 임원들이 다수 소속 되어 있는 한국원자력학회 출신이다.
한국의 원자력 업계는 매우 좁고 위세가 등등한 집단 사회다. 한수원에서 근무했던 고위 공직자들이 협력사들의 요직을 맡는 일이 일종의 전통으로 자리잡으며 각종 부패의 원흉으로 비난 받아왔다. 한수원의 퇴직자 재취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81명의 전 간부 및 2명의 직원이 61군데 사기업, 공기업 및 연구 기관에 고용되었다고 한다. 81명 중 73명은 발전소 감독관, 본사 부서장 급인 1급 이상 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정욱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와 규제기관은 이해당사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원전 관련 비리가 “양파껍질 벗기듯이” 나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규제기관과 원자력 발전 회사들의 공생관계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측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원자력 연구개발 예산과 안전 감시 예산을 부담하고 있는 현실 속에 규제기관의 독립성 역시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감시 기관과 업체들의 유착관계는 그들에게 ‘원전 마피아’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비리 스캔들 발발 이래 많은 한수원 및 업체 관련자들에게 제재 조치가 취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전 비리 ‘발본색원’ 촉구가 있은 후 산업통상자원부는 김균섭 한수원 사장을 면직 발표하고 원자력 발전소 설계와 기술에 대한 책임이 있는 한국전력기술 안승규 사장 역시 해임될 것임을 밝혔다.
대한민국은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깊게 낙담한 상황이나 원전 마피아의 보스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발각된 사람들은 그들이 조종하는 끊어진 실낱에 불과하며 배후의 조종자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국민들의 관심과 염려가 커져가는 가운데 정부는 전력난 해소를 위해 2030년까지 16기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할 것을 선언했다.
대한민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세계에너지총회를 개최하는 두 번째 국가다. 세계에너지총회는 92개국 3,000여 개 회원사로 구성된 민간 에너지 기구인 세계에너지협의회가 주관하는 에너지 관련 국제 회의다. 수 많은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며 에너지 관련 주요 기업들의 최신기술 교류 및 정보교류의 장이 될 예정이다.
원전 비리와 스캔들로 얼룩진 한국 에너지 업계로 인해 대구가 한국의 녹색성장 중심도시로서 세계에너지총회 개최지로 선택된 명목은 그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상태다. 에너지 당국이 에너지계의 올림픽으로까지 불리는 권위 있는 행사의 정당한 주최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시스템의 정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원전 마피아 일당이 그들만의 리그를 떠나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시기가 온 것이다.